본 글은, 2025년 10월 27일 매일경제와의 서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련 기사는 말미에 추가해 두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의 많은 참고 바랍니다.
질의 3. 일본과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라는 공통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케이치노믹스는 방위비 증액 등 대규모 재정지출을 강조하는데, 이런 정책이 미래 세대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한국의 재정 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입니까?
1. 일본 모델: 일상화된 재정 부양과 국가 부채
아베노믹스의 두 번째 화살*이었던 ‘기동적인 재정정책’은 사실상 상시적인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으로 귀결되었다. ‘다케이치노믹스’가 방위비 증액과 같은 추가적인 재정 확대를 예고하는 것은 이러한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일본은 이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이 이러한 막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배경에는 두 가지 특수성이 존재한다. 첫째, 일본은행이 양적완화를 통해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며 사실상 부채를 화폐화(monetization)**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발행된 국채의 대부분을 높은 저축률을 가진 자국민과 국내 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어, 해외 자본 유출로 인한 급격한 금융위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 : 하나의 화살은 약하지만, 세 개의 화살은 잘 부러지지 않는다는 이솝우화로부터 만들어진 일본의 관용표현
1) 첫 번째 화살 : 통화정책 - 엔화의 유통량을 늘리는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높임
2) 두 번째 화살 : 재정정책 - 채권 발행을 통해 경기를 부양
3) 세 번째 화살 : 구조개혁 - 규제 개혁 및 일본 경제의 체질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성장 동력을 재정립
(국가경제특구 정책, 여성 및 노인인력 활용 확대, 원전 재가동, 이민 완화를 통한 인구증가)
**부채의 화폐화 : 정부 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중앙은행에 국채를 매각하는 것
2.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 성장은 부채를 넘어설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모델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깊은 회의감이 존재한다. 핵심 문제는 막대한 재정지출이 국가의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지출이 미래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R&D나 혁신 인프라 투자보다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노린 현금성 지원이나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성장을 통한 부채 상환’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빚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정부는 막대한 부채의 이자 부담을 관리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도록 압박할 수밖에 없다. 이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인플레이션과 같은 새로운 경제 위협에 통화정책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한다. 결국 재정의 방만함과 통화정책의 종속이 서로를 정당화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3. 한국을 비추는 거울: 일본의 경고
한국 역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라는, 일본과 판박이 같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일본보다 양호하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정 확대를 통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은 매우 크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각종 현금성 복지 정책이 남발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 명확한 경고를 보낸다. 한번 재정 확대의 길로 들어서면, 정치적 부담 때문에 다시 긴축으로 전환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구조개혁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재정 중독에 빠지는 순간, 국가 경제는 서서히 활력을 잃고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
4. 한국을 위한 제언: 재정 건전성과 성장 중심의 개혁
따라서 한국 재정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모든 재정지출은 반드시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확한 목표와 연결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소비 진작을 위한 포퓰리즘적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R&D 투자, 교육 시스템 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과감한 규제 철폐 등 국가의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에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 ‘오늘의 지출이 내일의 빚이 아닌, 내일의 소득을 창출하도록’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의 막대한 국가부채가 역설적으로 단기적인 사회 및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일본의 고령층은 막대한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저축은 금융기관을 통해 국채 매입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다시 고령층을 위한 연금과 의료비를 지출한다. 이는 일본은행의 최종 대부자 역할 아래, 사회보장 시스템을 유지하고 급격한 사회 갈등을 막는 일종의 닫힌 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은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혁신적이고 위험성이 높은 신생 기업으로 흘러가야 할 자본이 정부의 소비성 지출을 충당하는 데 묶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현상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좀비 경제’를 고착화시킨다. 이는 안정적이지만 정체된, 바로 ‘저온호황’***의 본질이다. 한국은 재정정책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자본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향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 소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방향성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저온호황(低温好況) : 일본 경제의 특정 시기(주로 아베노믹스 이후부터 코로나19 이전, 그리고 최근의 회복기)를 설명하는 경제 용어로, "경기 지표상으로는 호황 국면이 길게 이어지고 있으나, 실제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뜨겁지 않고 미지근하다"는 뜻. 참고로 저온호황의 핵심 특징으로, 1) 기업은 부유, 가계는 정체, 2) 고용 풍년 속 임금 제자리, 3) 긴 호황 기간 vs 낮은 성장률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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