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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日本/일본 정치・사회 × 日本の政治・社会

2026년 5월 한일 정상회담 - 동상이몽의 한일, LNG '상호 융통' 및 '스와프 거래를 맺다!

1. 글로벌 복합 위기의 발발과 한일 관계의 지정학적 변곡점

  2026년 5월 19일부터 20일까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개최된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간의 한일 정상회담은 단순한 양자 외교의 연장선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리는 중대한 역사적 이정표이다. 과거 수십 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 인식의 차이, 영토 분쟁, 그리고 국내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해 주기적인 갈등과 봉합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전 지구적으로 불어닥친 복합 위기, 특히 미국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로 촉발된 중동발 에너지 수급 네트워크의 물리적 붕괴는 한일 양국에게 과거의 이념적, 정서적 갈등 양상을 뛰어넘어 국가의 실존적 생존을 위한 '초연결적 안보·경제 동맹'을 강제하는 압도적인 외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안동 정상회담은 2026년 1월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일본 나라현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 이은 답방 형식으로 치러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초등학교 시절까지 성장한 고향 안동에서 회담이 열렸다는 사실은 양국 정상이 양국의 수도인 서울과 도쿄라는 공식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공간을 벗어나, 서로의 개인적 정체성이 깃든 지방 도시를 교차 방문하며 인간적 신뢰 자본을 축적하는 셔틀외교의 질적 진화를 방증한다. 이러한 상징적 친교 행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양국이 직면한 치명적인 경제적, 안보적 위협 앞에서는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공동 대응을 끌어낼 수 있는 견고한 신뢰의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불러온 에너지 파동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간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스와프 협력의 경제적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다가오는 11월 만료 예정인 한일 통화스와프의 연장 논의 및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이 갖는 거시금융적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더불어 과거의 무역 통계가 시사하는 한일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상호의존성을 분석하고, 일본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의 DNA 감정이라는 인도주의적 협력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평가하며, 첨단 기술 및 치안 공조 등 미래지향적 의제들이 한일 관계 60주년을 앞두고 어떠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지 종합적으로 검증해 보고자 한다.

 

 

2. 거시역사적 산업 교역 구조의 진화와 석유화학 생태계의 상호의존성

  현재 한일 양국이 직면한 에너지 위기와 연대의 필연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국 산업 생태계가 지난 수십 년간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 형성되어 왔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선 1990년대 이후 한일 간의 교역은 주로 한국이 자본재와 핵심 부품 소재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완제품을 수출하는 형태를 띠며 구조적인 대일 무역 적자를 경험해왔다. 1992년의 교역 통계를 살펴보면, 그해 1월부터 4월까지 한국의 대일 수출은 통관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한 38억 달러, 수입은 5.2% 감소한 65억 달러를 기록하여 약 27억 5,000만 달러의 무역 적자를 냈다. 당시 한국 경제의 경기 둔화로 인해 기계류 및 운반용 기계와 같은 자본재의 수입이 감소(-15.1%)하면서 적자 폭이 전년 동월 대비 2억 4,400만 달러 개선되기는 하였으나, 본질적인 의존 구조는 여전했다. 특히 화학공업 제품의 경우 동기간 수출 5억 9,300만 달러, 수입 13억 9,200만 달러로 극심한 불균형을 보였으며, 전자 및 전기(수출 6억 500만 달러, 수입 17억 1,600만 달러), 철강 및 금속제품(수출 6억 8,100만 달러, 수입 7억 4,800만 달러) 등에서도 일본의 비교 우위가 명확히 나타났다. 섬유류나 생활용품 등 경공업 분야에서만 한국이 흑자를 기록하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형 교역 구조였다.

 

  가장 결정적인 적자 요인은 금속공작기계, 화학기계, 원동기 등 일반기계류의 무역수지였다. 1991년 일반기계류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21억 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당해 한국의 전체 무역수지 적자인 96억 달러보다 25억 달러나 더 많은 수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 구조는 1990년에도 나타나 일반기계류 무역수지 적자가 100억 달러에 달해 총 무역수지 적자(48억 달러)의 2배를 웃돌았으며, 총무역수지가 9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던 1989년에도 일반기계류 적자는 57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후 일본의 석유화학 산업은 아시아 시장의 활황에 힘입어 막대한 수출 경쟁력을 구가했다. 2004년 상반기(1~6월) 일본 경제산업성 화학과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석유화학 제품(에틸렌 기준) 수출량은 112만 5,200톤에 달하며 수출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성장가도를 달렸다. 한국 역시 중화학 공업 고도화를 통해 세계적인 석유화학 강국으로 성장하면서 한일 양국은 아시아 역내 시장에서 때로는 치열한 경합을, 때로는 원료와 중간재를 주고받는 긴밀한 공급망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고도화되고 상호 얽혀있는 양국의 거대한 석유화학 및 제조업 생태계는 하나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산업의 기초 혈액이 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절대적인 중동 의존도이다. 2026년에 발생한 지정학적 위기는 1992년이나 2004년의 교역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양국 산업 생태계 자체를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는 시스템적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도 및 시기 한일 주요 무역 및 산업 지표 주요 함의 및 데이터
1992년 1~4월 한국 대일 수출 38억 달러, 수입 65억 달러 자본재 수입 의존에 따른 만성적 대일 무역 적자 지속
(-27.5억 달러)
1992년 1~4월 화학공업 수출 5.9억 달러, 수입 13.9억 달러 초기 화학 산업 생태계에서의 수입 의존성 확인
2004년 상반기 일본 석유화학 수출 112.5만 톤 달성 (에틸렌 기준) 아시아 시장 활황을 바탕으로 한 일본 석유화학 산업의 르네상스
2026년 3월 일본 원유 수입량 1,038만㎘ (전년 대비 17% 급감) 1989년 이후 37년 만의 최저치 기록, 산업 전방위 셧다운 위기
2026년 현재 국제 나프타 가격 톤당 1,200달러까지 폭등 후
1,000달러 선
중동발 지정학적 쇼크로 인한 기초 원자재 가격의 2배 급등

 

 

 

 

3. 중동발 에너지 공급망 붕괴와 지경학적 단층선의 노출

  최근 중동 지역에서 본격화된 미국과 이란 간의 무력 분쟁은 글로벌 에너지 해상 수송의 절대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이 좁은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동맥이다. 이 해협의 마비는 곧바로 중동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일 양국의 경제에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충격을 던졌다.

 

3.1 일본의 에너지 수급 위기와 산업계의 연쇄적 쇼크

  일본의 지정학적 에너지 구조는 현재 완벽한 위기에 봉착했다. 일본은 전체 원유 수입량의 9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막대한 물량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의 6.3%가 오직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단일 경로를 통해 수입된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의 통계에 따르면, 해협 봉쇄의 여파가 들이닥친 지난 2026년 3월 일본의 원유 수입량은 1,038만㎘로 전년 동기 대비 17%나 고꾸라졌다. 이는 1989년 이후 37년 만에 기록된 가장 낮은 수치로, 일본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에너지마저 부족해지는 초유의 사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치명적인 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이란 전쟁 직전 1톤당 60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 현물 나프타 가격은 개전 이후 한때 1,200달러까지 수직 상승했으며, 현재도 1,000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이로 인해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한 일본 내 에틸렌 공장들은 가동률 하향 조정에 돌입했다. 일본 정밀화학 산업의 거점인 미쓰비시케미칼과 미쓰이화학이 선제적으로 생산량을 축적 감축시켰으며, 이데미츠코산은 원료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경우 가동 중인 공장 두 곳을 전면 폐쇄할 수밖에 없다고 고객사에 엄중히 통고했다.

 

포장지를 인쇄할 원재료가 부족해 흑백으로 제품을 출하할 지경에 이른 일본 상황

 

  수요의 80% 이상을 중동에 기대어 온 산업의 기초 원료 공급이 끊기자, 시트, 필름, 포장 자재, 타이어 등에 쓰이는 합성고무 및 합성수지 업체들은 선제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내 심각한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나아가 항공업계 역시 직격탄을 맞아 연료 부족과 가격 폭등으로 인해 당장 5월부터 국제선 유류할증료를 2배로 인상했고, 면제되어 왔던 국내선 노선에도 유류할증료 도입을 저울질하는 등 물류 및 운송 밸류체인 전반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3.2 일본 정부의 다급한 비상조치와 구조적 한계

  위기감이 극도로 고조되자 일본 정부는 벼랑 끝 전술에 가까운 비상 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단기적 처방으로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비축유를 전례 없는 속도로 시장에 풀고 있다. 3월 초 민간 비축유 15일분 방출을 시작으로, 같은 달 26일에는 국가 비축유 1개월분을, 그리고 5월 1일에는 추가로 20일분을 연속적으로 시장에 방출했다. 이러한 연이은 방출의 여파로 현재 일본의 석유 비축량은 233일분 수준까지 하락했다. 비축유 방출은 급격한 유가 상승을 제어하고 단기적인 공장 셧다운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가의 전략적 완충 능력을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양날의 검이다.

 

  이와 동시에 일본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수입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아제르바이잔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항구에 입항했으며, 멕시코와의 원유 공급 협력을 서두르는 등 지구 반대편의 자원까지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 4월 29일과 5월 14일, 위험을 무릅쓰고 호르무즈 해협을 돌파한 일본 국적 유조선들이 속속 본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이는 국지적인 운송 성공일 뿐 글로벌 수송망 마비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3.3 글로벌 우회 전략과 POWERR Asia 구상의 이면

  일본의 생존 전략은 다각도의 글로벌 외교 안보 역량 동원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3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최대 730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타결 지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 차세대 에너지원인 소형모듈원자로(SMR) 및 천연가스 발전 시설을 미국 영토 내에 합작 건설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미국의 안정적인 자원과 인프라에 일본의 안보를 기탁하려는 거대한 지정학적 헤징(Hedging) 전략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동남아시아를 향한 일본의 15조 원 규모 금융 지원 전략이다. 일본은 최근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100억 달러(약 15조 원) 규모의 거대한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표면적인 ODA(공적개발원조)가 아니라, 극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생존 전략이다. 현재 일본은 나프타 공급 부족으로 인해 수술용 장갑, 수액 용기 등 필수 보건·의료 물품의 원자재 공급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필수 물자들의 핵심 제조 기지가 바로 동남아시아이다. 따라서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무리 없이 원유를 수급하여 공장을 가동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금융을 지원함으로써, 일본 본토로 유입되는 필수 의료 자재 공급망의 완전한 붕괴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에 약 1조 6천억엔에 해당하는 금융지원책을 발표하는 일본 다카이치 총리

 

3.4 대한민국의 취약성과 전략적 이해관계의 일치

  대한민국의 상황은 일본과 본질적으로 판박이와 같다. 쉘(Shell)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극복 이후 천연가스와 LNG가 청정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유연 에너지원으로 부상함에 따라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미 세계 3위의 거대한 LNG 수입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원유 수입 구조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전체 수입량의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 이 중 95%라는 압도적인 물량이 분쟁의 화약고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만 국내 정유사 및 화학 단지로 유입될 수 있다. 석유를 한 방울도 생산하지 못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정유 및 화학 설비를 갖춘 한국 경제에 있어,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곧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뇌관이다.

 

일본 에너지 수급의 생명선, 호르무즈 해협

 

  결국, 중동 리스크라는 동일한 치명적 취약점을 안고 있는 한일 양국은 개별 국가 단위의 비축유 방출이나 대체선 확보만으로는 이 거대한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이르렀다. 두 국가는 수입선 다변화, 자원 비축 역량, 외환 동원 능력 등에 있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잉여 자원을 교환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이다. 이것이 2026년 5월 안동 정상회담에서 에너지 공급망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과 '스와프 협력'이 최우선 핵심 의제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배경이다.

 

[한국과 일본의 에너지 안보 취약 상황 요약]

에너지 안보 취약 영역 대한민국 (South Korea) 일본 (Japan) 지경학적 위기 수치 및
상호 취약성
원유 도입
중동 의존도
전체 수입 원유의
70% 이상 의존
전체 수입 원유의
90% 이상 절대 의존
호르무즈 해협 물리적 봉쇄 시
즉각적인 에너지 대란 발생
나프타(Naphtha)
공급 구조
전체 사용량의
약 3분의 2를 수입에 의존
전체 사용량의 60%를
수입에 의존 (이 중 70%는 중동발)
수입 나프타 중 중동 비중
각각 60%(韓), 70%(日) 차지
석유화학 핵심 기업
가동률
여천NCC 불가항력 선언 및
가동률 60%대로 급감
미쓰비시, 미쓰이 감산 돌입 및
이데미츠코산 공장 폐쇄 경고
단기 해결 난망 시 동북아시아
정밀화학 제조망 전체 셧다운 도래
산업계
에너지 비축 현황
나프타 재고 수준
단 2주분(14일분) 수준에 한정
나프타 재고 수준 20일분 한정 및
석유 비축 233일분으로 하락
물리적 비축 여력 한계 도달로
공동 자원 안전망 구축 시급

 

 

4. 상호 융통과 연대의 제도화: 에너지·공급망 스와프 메커니즘의 실체

  안동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한 에너지 협력의 핵심 성과는 단순한 시장 정보 공유를 넘어선, 물리적 실물 자원의 직접적인 교환 및 대여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했다는 데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는 에너지 공급망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원유 및 석유제품, 그리고 LNG 분야에서 '상호 융통' 및 '스와프(Swap) 거래'라는 전례 없는 비상 협력 체계를 가동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4.1 LNG 및 원유 스와프의 작동 원리와 경제 안보적 효익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원유 및 석유제품 스와프는 앞서 지난 2026년 3월 한국가스공사(KOGAS)와 일본 최대의 에너지 및 발전 기업인 JERA(제라)가 체결했던 'LNG 수급 협력 협약서'의 성공적인 모델을 원유 산업 전반으로 대폭 확장한 것이다. 스와프(Swap) 거래란 두 당사자가 서로 가진 금융 상품이나 실물 자원을 일정한 조건(시기, 가격, 환율 등)에 따라 교환하기로 하는 상호 계약이다. 원유와 LNG 스와프는 위기 발생 시 서로의 에너지 자원을 빌려 쓰거나 맞바꾸는 방식으로 수급 충격을 최소화하는 강력한 긴급 안전장치(Safety Net) 기능을 수행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의 LNG 수요 통계를 기반으로, 한국과 일본이 함께 LNG를 협력하여 도입하고 스왑하는 협정을 맺는다면 거대한 구매력으로 오히려 전 세계의 LNG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가스공사는 단일 기업 기준 세계 1위의 LNG 구매력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 JERA는 세계 2위의 구매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양대 공룡 기구가 수량 및 수급 일정을 연대 통제할 경우, 전 세계 LNG 생산국 및 유통 메이저를 압박하는 강력한 공동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이 판매자 위주의 가스 시장 환경에서 영구적인 매수 우위 지위를 유지하고 불합리한 유가 연동 할증료를 방어하는 압력 단체로 진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전 세계 주요 LNG 수출국과 주요 수입국. 일본과 한국은 압도적인 수입량을 기록, 이 두 바이어의 협력은 전세계 LNG 수급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일본의 우익들은 일본도 원유가 부족한데 한국에게 줄 것은 없다는 등의 댓글로 반발하지만, 한일 협력으로 LNG를 구매하거나 수입량을 통제한다면 오히려 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이 매수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의 석유제품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인데 이를 모르는 우익들과 일본 네티즌들의 주장은 매우 무지하며 감정적이며 단순한 혐한 논리에 빠진 주장이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유업계의 대일본 석유제품 수출은 일본 에너지 소비의 거대한 축을 점하고 있다. 정제 가공 능력이 우수한 한국 정유사로부터 생산되는 휘발유 수입 물량은 일본 전체 휘발유 소비량의 무려 6.5%를 지탱하고 있으며, 항공 운송 및 산업 물류의 핵심 원료인 항공유(Jet Fuel)는 일본 국가 소비량의 31.2%라는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나프타 및 원유 정제 라인이 가동 중단될 경우 일본의 항공 및 차량 물류 역시 전면 마비되는 공멸의 구조이다. 따라서 원유 비축량이 우수한 일본과 석유 정제 생산 능력이 독보적인 한국의 실물 스와프 결합은 완벽한 상호 호혜적 거래이다.

 

  이러한 실물 에너지 스와프가 양국에 가져다주는 정교한 이점은 두 가지 차원에서 극대화된다.

 

  첫째, 시계열적 수급 불일치의 완전 해소이다. 원유와 LNG 수입은 장기 계약에 기초한 거대 유조선 선단에 의해 이송되는데, 기상 이변이나 국지적 해상 테러 등으로 인해 운송 노선이 막힐 경우 정제 설비의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 이때 양국이 맺은 스와프 계약에 근거하여, 당장 재고 여유가 있거나 먼바다에서 수송 선박이 먼저 도달하는 국가가 물량을 융통(카고 교환 방식)하고, 상대국의 지연 화물이 추후 국내 입항했을 때 실물 상환이나 달러화 정산을 거침으로써 양국 제조 공정의 연속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장할 수 있다.

 

  둘째, 급격한 에너지 변동성 국면에서 '패닉 바잉' 방어 기제를 형성한다. 현물 시장의 일시적 교란으로 가격이 폭등할 때 단기 조달 물량을 획득하고자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단가를 지불하고 구매 경쟁을 벌이는 대신, 근거리에 위치한 상대국의 잉여 물량을 긴급 차용함으로써 에너지 도입 단가를 대폭 하향 안정화할 수 있다.

 

4.2 POWERR Asia 파트너십과 한일 산업통상정책대화의 출범

  이러한 양자 간의 에너지 밀착을 다자적이고 광역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려는 구상 역시 이번 회담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제안한 '아시아 에너지·자원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Partnership on Wide Energy and Resources Resilience in Asia=POWERR Asia)'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니셔티브는 동북아를 넘어 아시아 역내 국가들이 연대하여 화석 연료, 핵심 광물, 보건 물자 등의 비축 역량을 공유하고 비상시 공급망을 상호 지원하는 거대한 자원 안보 블록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다카이치 총리의 제안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급등하고 있는 일본의 휘발유 가격

 

 

  나아가 이러한 거시적 합의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이행으로 담보하기 위해,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양측 고위급 인사가 직접 참여하는 '한일 산업통상정책대화(Industry and Trade Policy Dialogue)'를 공식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는 원유 비축 분야의 공조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나프타 등 석유화학 밸류체인 전반과 핵심 광물 공급망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의 정보 공유와 비상 대응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정부 간 논의를 상설화함으로써 과거처럼 정치적 부침에 따라 경제 협력이 중단되는 리스크를 차단하고 실무적 소통 채널을 심화시킨 것이다.

 

 

5. 금융 안전망의 진화: 100억 달러 통화스와프와 거시경제적 방어선

  실물 자원의 고갈이 실물 경제의 공장 가동을 멈춘다면, 위기의 최종적인 파국은 언제나 외환 시장과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통해 완성된다. 중동 사태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폭등은 수입액 증가로 직결되어 양국의 무역수지를 급격히 악화시키며, 이는 필연적으로 원화 및 엔화 가치의 동반 하락과 대규모 자본 유출 우려를 자극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안동 정상회담을 전후로 하여 가장 주목받는 거시금융 의제는 다가오는 2026년 11월 말 만료를 앞둔 '한일 통화스와프(Currency Swap)'의 연장 여부이다.

 

5.1 미 달러화(U.S. Dollar) 기반 양방향 스와프의 전략적 중요성

  통화스와프는 외환위기 등 비상 상황 발생 시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미리 약정된 환율로 상대국 통화나 기축통화를 빌려올 수 있는, 일종의 국가 간 '마이너스 통장' 계약이다. 현재 작동 중인 한일 통화스와프는 과거 2015년 외교적 마찰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2023년 도쿄에서 열린 제8차 한일 재무장관회의를 통해 당시 추경호 부총리와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의 합의로 8년 만에 극적으로 복원된 것이다. 이 계약의 한도는 최대 100억 달러에 달하며, 한일 금융·경제 협력 공고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 스와프 계약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그 이름과 달리 원화와 엔화를 직접 맞바꾸는 '원-엔 스와프'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3년에 복원되어 현재 만료를 앞두고 있는 이 통화스와프는 전액 '미 달러화(U.S. Dollar) 베이스'로 설계된 양방향 장치이다. 즉, 한국이 원화를 맡기면 일본이 보유한 외환보유액 중 미 달러를 빌려주고, 반대로 일본이 엔화를 맡기면 한국이 보유한 미 달러를 내어주는 구조이다. 일본은행(BOJ) 역시 2023년 12월 1일 체결 당시 이를 "양국이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내고 상대방으로부터 미 달러화를 받을 수 있는 양방향 장치"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왜 기축통화인 달러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가? 글로벌 금융 경색 국면이나 지정학적 위기 시 외환시장에서 가장 먼저 유동성이 말라붙는 화폐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폭증하는 '달러'이기 때문이다. 위기 발생 시 국내 은행과 기업들은 해외 채권 상환 및 필수 수입재(에너지 등) 결제를 위해 당장 현찰 달러가 필요해진다. 달러 조달이 어려워지면 원·달러 환율이 통제 불능 상태로 급등하며 외환위기가 촉발된다. 따라서 환율을 방어하고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엔화보다는 글로벌 유동성의 핵심인 달러화의 즉각적인 조달 여부가 국가 생존에 훨씬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2023년 복원된 통화스와프가 달러 기반으로 설계된 것이며, 에너지 수입 대금 결제가 대부분 달러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이 스와프의 연장은 양국 거시 경제 방어에 필수적이다.

 

5.2 통화스와프의 역사적 궤적과 '무제한 투자용 스와프' 구상

  한일 통화스와프의 출발점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뼈아픈 교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시아 국가들은 위기가 도래했을 때 각자도생하는 구조로는 거대한 투기 자본과 외환 경색을 버텨낼 수 없다는 사실을 통감했고, 2000년 아세안+3 차원의 역내 금융안전망 구상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출범시켰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과 일본은 2001년 7월 최초로 2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당시는 한국이 원화를 맡기고 일본의 달러를 일방적으로 빌리는 형태였다.

 

  이후 경제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그 덩치를 키우며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2005년에 30억 달러 규모의 원-엔 스와프가 별도 체결되었고, 2006년에는 달러 기반 스와프가 100억 달러 양방향으로 확대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원-엔 스와프는 200억 달러로 급증했으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확산 우려가 극에 달했을 때는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최대 700억 달러까지 예치하고 300억 달러 규모의 상대국 통화 및 400억 달러 상당의 제3국 기축통화를 차입할 수 있는 혼합 체계를 통해 사상 최대 규모의 공동 금융 동맹을 구성한 바 있다.

 

연도 및 시기 한일 및 다자 통화스와프 전개 과정 주요 특징 및 역사적 배경
1997년 이후 아세안+3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태동 외환위기 각자도생의 한계 인식, 역내 안전망 구상
2001년 7월 최초 한일 통화스와프 (20억 달러) 한국 일방향으로 달러 차입 구조
2006년 달러 기반 스와프 한도 100억 달러로 확대 양방향 대등한 계약으로의 발전
2011년 총 700억 달러 규모 (최대 정점) 유럽 재정위기 방어를 위한 방벽 극대화
2015년 한일 통화스와프 전면 종료 과거사 문제 등 정치외교적 갈등 심화 여파
2021년 3월 한국-스위스 통화스와프 5년 연장 체결 2026년까지 연장, 글로벌 금융 안전망 다변화 기조
2023년 12월 100억 달러 한일 통화스와프 복원 8년 만의 재개, 전액 미 달러화 베이스 양방향
2026년 11월 한일 통화스와프 만료 예정 안동 정상회담을 계기로 연장 여부 핵심 논의

 

  한국 정부는 외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통화스와프 네트워크를 다변화하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 3월에는 기축통화국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스위스와의 통화스와프를 2026년까지 5년 연장하는 데 성공하며 금융 방어막을 공고히 한 바 있다. 이러한 다변화 전략 속에서 11월 만료되는 한일 통화스와프의 갱신은 역내 신인도 유지에 방점을 찍는 화룡점정이다.

 

  더 나아가 최근 거시금융 일각에서는 대미 투자와 얽힌 새로운 개념의 스와프가 논의되고 있다. 미국 시장 내 환율 변동 충격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서 달러를 직접 빌려 현지 투자에 활용하겠다는 이른바 '무제한 통화스와프 구상'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옐런 미 재무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러한 대미 투자 지원용 스와프 관련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맺는 통화스와프는 상대국의 금융 불안이 커져 미국 시장에 전이될 우려가 있을 때 유동성을 공급하는 목적이 강하며, 특정 국가의 '대미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스와프를 맺은 전례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지정학적 블록화 시대에 투자와 금융, 안보가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하며, 한일 양국 또한 향후 단순한 위기 방어용 스와프를 넘어 전략적 해외 투자를 보조하는 형태의 다층적 금융 공조를 모색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5.3 관료 및 경제당국 간의 미시적 통합 심화

  재무장관회의 및 정상회담을 통한 거시적 공조는 경제 부처 실무진의 교류를 통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2023년 제8차 재무장관회의 당시 한일 양국은 2016년 이후 단절되었던 관세청장 회의를 재개하여 대러시아 및 대북 제재의 이행 실태와 폭증하는 전자상거래 문제를 공동으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국제조세 회피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한일 세제당국 간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양국 경제부처의 젊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한 단기 직원 교환 프로그램(Exchange Program)까지 신설했다. 이는 위기 시 탑다운(Top-down) 방식의 정치적 결단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료 조직의 바닥에서부터 정책 네트워크를 통합시켜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복원력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노력의 일환이다.

 

 

6. 인도주의적 연대와 과거사의 새로운 해법: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의 상징성

  경제 안보 동맹과 셔틀외교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하드웨어를 구축한다면, 과거의 역사적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은 양국 관계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소프트웨어이다. 이번 안동 정상회담을 단 하루 앞둔 2026년 5월 18일, 대한민국 외교부와 행정안전부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위치한 조세이(長生) 탄광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에 본격 착수할 계획임을 공식 발표했다.

 

수몰된 조세이 탄광 입구

 

6.1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의 비극과 80년의 방치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 갱도가 바다 밑으로 깊숙이 뻗어 있던 해저 탄광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끔찍한 참사이다. 이 붕괴 사고로 인해 깊고 어두운 갱도 안에서 가혹한 노역에 시달리던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136명과 일본인 관리자 및 노동자 47명 등 총 183명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수몰되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사고 직후 일본 당국은 생존자 구조나 유해 수습이라는 기본적인 인도적 조치 대신, 바닷물 유입을 막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갱도를 그대로 콘크리트로 봉쇄해버리는 비정한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유해는 무려 8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해저 갱도라는 차가운 무덤 속에 속절없이 방치되어야만 했다.

 

  이 철저히 잊힌 비극을 다시 역사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양국 정부의 공식 기구가 아니었다. 일본 내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들로 구성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새기는 모임)'이라는 민간 단체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자체 자금을 모아 위험을 무릅쓰고 끈질긴 해저 수중 탐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 2025년 8월 25일 희생자 인골로 추정되는 유해 4점을 최초로 발견하여 인양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 2026년 1월과 2월에 거쳐 추가로 유해 1점을 수습하는 역사적인 쾌거를 이루어냈다.

 

  다만, 유해 수습 과정 중인 2026년 2월에 대만인 자원봉사자가 안전 사고로 순직하면서 발굴 작업이 전면 중단되는 뼈아픈 좌절을 겪기도 했다. 이는 양국 과거사 문제 대응을 공식적 국가 재원의 투입 없이 민간 단체의 헌신과 자금 조달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온 현 시스템의 명백한 구조적 한계를 반증한다.

 

6.2 법적 분쟁에서 인도주의적 협력으로의 프레임 전환

  발굴된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 착수 계획은 지난 1월 일본 나라현에서 열린 2026년 1차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긍정적으로 구두 합의했던 사안이다. 합의 이후 양국 외교당국은 긴밀한 실무 협의를 거쳐 DNA 샘플 채취, 유족 대조, 결과 공유 등 감정의 구체적인 과학적 절차와 방법론을 조율해왔고 , 마침내 안동 정상회담 직전에 이를 공동 보도자료 형태로 발표함으로써 정상외교의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물로 입증했다.

 

  이러한 양국의 행보가 외교가와 학계에서 고무적인 평가를 받는 본질적인 이유는,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외교적 방법론의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제동원 배상 판결, 위안부 합의 논란, 강제 징용 노동자상 설치 등 양국 간의 핵심 과거사 현안은 주로 '법적 책임 인정'과 '금전적 배상'이라는 첨예한 정치·사법적 영역에서 충돌하며 철저한 제로섬(Zero-sum) 게임의 양상을 띠어왔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면 국내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는 구조로 인해, 한일 관계 전체가 과거사의 늪에 빠져 미래지향적 협력마저 전면 마비되는 이른바 '외교적 동맥경화' 현상이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수몰된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DNA를 감정하는 작업은 정치적 이념이나 법적 배상 책임의 굴레를 벗어난, 순수한 '인도주의적 협력(Humanitarian Cooperation)'의 영역에 속한다.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땅 깊은 바닷속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의 신원을 최신 과학기술을 통해 확인하여 유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이다. 양국 정부는 사과와 배상이라는 폭발력이 강한 정치적 갈등 요소를 잠시 우회하고, 희생자 신원 확인이라는 인도적 접근을 최우선으로 택함으로써 정치적 반발과 외교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과거사의 곪은 상처를 보듬는 성숙한 관리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다만, 지경학적 및 사료 분석 관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명백한 한계점도 존재한다. 이번 양국 정상이 합의한 범주는 철저히 '이미 발견된 유해의 DNA 감정 협력'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며, 여전히 위험천만한 해저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대다수 유해의 수습 및 신규 발굴 작업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새기는 모임'을 필두로 한 민간 시민사회의 몫과 비용 부담으로 방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에서 "조세이 탄광 유해 DNA 감정이 곧 시작되는 것은, 오랜 시간 아픔으로 남아 있던 과거사 문제에 있어 인도주의적 사안부터 함께 협력해 나가는 매우 고무적이고 의미 있는 첫 걸음"이라고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전향적 외교 프레임 전환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사건명 및
협력 안건
참사 및 협력 데이터 상세 강제동원 노동자 출신 분포 협력 진행 단계 및 제도적 한계
조세이 탄광
해저 수몰 참사
1942년 2월 3일 해저 갱도 천장 붕괴, 조선인 136명 등 총 183명 사망 수몰 희생자 중 78명이 경북 및 대구 지역 출신으로 확인 일제의 해저 갱구 콘크리트 봉쇄 및 80여 년간 공식 수색 전무
민간 주도
해저 유해 발굴
2025년 8월 유해 4점 최초 발견, 2026년 1~2월 유해 1점 추가 수습 일본 시민단체 '새기는 모임'의 독자 예산 및 자원봉사 추진 2026년 2월 유해 발굴 지원 중 대만인 잠수사 사망으로 작업 잠정 중단
DNA 감정 및
신원 대조
양국 외교당국 간 실무 절차 합의 완료 및 행안부 유족 대조 착수 행정안전부 주관 유족 유전자 샘플 확보 및 일측 송부 합의 영역이 '발견된 유해 감정'에 국한되어 신규 발굴 책임은 민간 잔류

 

 

7. 미시적 공공 안전과 미래 기술: 초국가 치안 공조와 AI 기본사회

  안동 정상회담은 에너지와 금융이라는 거대 거시 담론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의 존재 이유인 국민의 일상과 생명,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미시적 공공 안전망(Micro Public Safety Net) 구축으로까지 협력의 외연을 확장했다.

 

7.1 한일 경찰청 간 초국가 스캠 범죄 공동 대응 협력각서(MOU)

  양국 정상은 날로 첨단화, 국제화, 지능화되는 초국가적 범죄에 단호히 맞서 양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실질적인 치안 공조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그 핵심 성과물이 바로 양국 경찰청 간에 체결된 '초국가 스캠범죄 공동 대응을 위한 협력각서(MOU)'이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딥페이크(Deepfake) 기술, 추적이 어려운 가상자산(암호화폐) 자금 세탁 기법, 텔레그램을 비롯한 다크웹 기반의 익명 메신저 등을 악용한 초국가적 스캠(Scam, 신용 사기) 및 보이스피싱 범죄는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 모두에게 수조 원대에 달하는 심각한 재산상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러한 거대 범죄 조직들은 대부분 수사망이 미치기 어려운 동남아시아나 제3국에 서버와 콜센터를 은닉하고 양국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기 때문에, 단일 국가 경찰의 수사력만으로는 조직의 수뇌부를 일망타진하거나 해외로 빼돌려진 범죄 수익을 환수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양국 경찰청 간의 이번 협력각서 체결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수사 정보의 실시간 공유, 인터폴 적색수배자 및 피의자 강제 송환 프로세스의 간소화, 최신 자금 추적 기법의 상호 교류 등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담고 있어 양국 공권력의 수사 신속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는 정상외교가 추상적인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국민 체감형 협력'으로 직결되었음을 증명한다.

 

7.2 첨단 기술 패권 연대와 글로벌 AI 기본사회 선도

  과거사 해결과 단기적 위기 대응이라는 험난한 허들을 넘은 한일 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첨단 기술 주도권 장악이라는 미래지향적 어젠다로 전략적 시야를 넓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안동 회담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인공지능(AI) 분야의 획기적인 기술 발전에 대응하여, 양국이 가진 강점을 결합할 것을 제안했다. 소프트웨어 및 통신 인프라 혁신 역량이 뛰어난 한국과 정밀 기계, 로보틱스, 소재·부품 등 하드웨어 원천 기술이 압도적인 일본이 전략적이고 호혜적인 협력 기반을 구축한다면, 양국 기업은 막강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기술의 단순한 산업적 융합을 넘어, 인공지능이 초래할 심각한 윤리적, 사회적 부작용(가짜 뉴스, 일자리 붕괴, 사생활 침해 등)을 통제하고 제어하기 위해 양국이 '글로벌 AI 기본사회'를 선도하는 룰 메이커(Rule Maker) 역할을 수행하자는 거시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AI 혜택의 공평한 분배와 안전한 활용을 위한 국제적 규범을 한일이 주도하겠다는 선언이다. 이에 발맞추어 인공지능 시대에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국민의 안전과 권리 보호를 위해 양국 개인정보보호 당국 간의 실무 협력 논의를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기술 진흥과 기본권 보호의 절묘한 균형을 맞추려는 진일보한 시도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우주 탐사, 차세대 바이오 헬스케어 등 천문학적인 자본과 긴 연구개발(R&D) 기간이 소요되는 미래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양국이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핵심 역량을 융합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는 거대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기술 굴기에 맞서 동북아시아 역내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연대의 성격을 띤다.

 

 

8. 공간적 기호학과 셔틀외교의 질적 진화: 탈관료주의와 문화 외교의 정점

  2026년 5월 안동 정상회담이 보여준 또 하나의 중요한 외교적 성취는 '셔틀외교(Shuttle Diplomacy)'의 공간적 확장과 질적 깊이의 심화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1월, 1차 한일정상회담을 위해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일본 나라시(奈良市)를 방문했으며, 그로부터 불과 4개월 만에 이번에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 대통령의 유년 시절 고향인 대한민국 안동시를 전격 방문하여 1박 2일의 일정을 소화했다.

 

8.1 고향이 부여하는 외교적 공간의 재해석

  국가 원수들이 양국의 행정 수도인 서울이나 도쿄가 아닌, 서로의 고향을 교차 방문하여 릴레이 회담을 이어간 것은 양국 외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행보이다. 정상외교의 무대를 수도에 국한하지 않고 나라, 안동 등 전통과 문화의 상징성이 살아 숨 쉬는 지방 소도시로 확장한 것은 양국 외교 라인의 치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소프트파워(Soft Power) 전략이다.

 

  수도는 치열한 정치적 이견, 입법부의 견제, 언론의 날 선 비판, 그리고 다양한 이익 단체의 요구가 날카롭게 집중되는 긴장과 압박의 공간이다. 반면 정상들의 '고향'이나 역사적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지방 소도시'는 이러한 정치적 중압감을 덜어내고, 정서적인 무장 해제와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최적화된 공간적 기호학을 지닌다. 양국 정상이 고향을 오가며 보여준 이러한 탈관료주의적 행보는 한일관계가 수도권의 엘리트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지역 구석구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은 파격적인 의전과 환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5월 19일 정오경 전용기로 대구공항에 도착한 다카이치 총리는 안동 스탠포드호텔에 마련된 회담장에 입고했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이곳에서 최고 수준의 국빈 방문에 준하는 파격적 영접을 선보였다. 호텔 현관에는 일본어 통역과 VIP 전담 직원이 대기했고, 취타대와 12명의 기수단, 전통 의장대 및 군악대가 도열해 환영 연주를 울렸다. 이 대통령이 차량 뒷문이 열리자마자 다가가 악수를 건네며 "시골 소도시까지 오시느라 너무 고생하셨다. 제가 어젯밤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정겹게 인사하자, 다카이치 총리는 화려한 전통 의장대를 가리키며 "훌륭하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는 지난 1월 나라현 방문 당시 다카이치 총리가 정상외교의 엄격한 관례를 깨고 이 대통령 부부를 숙소 앞까지 직접 마중 나와 영접하며 보여주었던 '파격 영접'에 대한 세심하고도 상호주의적인 감사의 화답이었다.

 

  양국 정상이 105분간에 걸쳐 진행한 공식 정상회담은 무거운 외교적 문법을 걷어내고 인간적 정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나라현 회담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오랜 평생 소원 중 하나였던 드럼 연주를 위해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1대1 개인 교습을 제공해 드럼 연주를 가능케 했던 일화는 양 정상이 축적한 친밀함의 두께를 대변한다.

 

8.2 전통문화를 융합한 친교와 미래 비전의 시각화

  공식 회담 이후 진행된 친교 및 만찬 일정은 양국의 오랜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융합하여 미래지향적인 화합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주력했다. 만찬의 메뉴는 안동 종가의 고(古)조리서인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요리법을 현대적 미각으로 재해석한 퓨전 한식으로 채워졌다. 닭요리인 '전계아', 최상급 안동한우 갈비구이, 신선로, 안동 최고급 쌀로 지은 밥 등이 상에 올랐다.

 

  만찬주 역시 안동의 전통 명주인 '태사주'와 '명인 안동소주'가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일본 '나라현산 사케(Sake)'와 함께 나란히 테이블에 올라 양국의 전통이 어우러졌다. 특히 식사 후 후식으로 한국의 전통 다과인 '전약'과 일본의 전통 다과인 '모찌(떡)'를 하나의 접시에 조화롭게 담아낸 것은 양국의 평등한 교류와 화합을 은유적으로 시각화한 문화 외교의 백미였다.

 

  만찬 이후 펼쳐진 문화 예술 공연과 친교 행사는 서로 다른 정체성의 결합을 상징했다. 양국 정상은 만찬 직후 재일 한국계 피아니스트인 양방언 씨의 피아노 연주와 피아노·바이올린·첼로 삼중주 공연을 감상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활동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간직한 디아스포라 예술가인 양방언의 음악은 두 국가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적 승화를 보여주었다. 

 

 

 

  이어 하회마을 나루터로 이동한 두 정상은 밤하늘을 수놓는 한국의 전통 불꽃놀이인 '선유줄불놀이'(낙화 이벤트)와 이를 배경으로 펼쳐진 창작 판소리 '흩어지는 불꽃처럼' 공연을 함께 관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고 지켜지는 불꽃이 오랜 세월을 거쳐 발전한 한일 양국 관계와 닮았다"는 전통 연출가의 장내 멘트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낙화의 불꽃은 양국이 직면한 어두운 위기를 함께 밝혀 나가자는 미래에 대한 서약이었다.

 

 

  이러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양국 정상은 격의 없는 인간적 소통을 이어갔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 대통령이 선물 받은 안경테를 즉석에서 직접 써보고 기념 촬영을 진행했으며, 반대로 이 대통령의 원래 안경을 다카이치 총리가 착용해 보는 등 소탈한 친교 장면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기도 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만찬 중 "내일 일본 국회 일정이 있어 안동의 명주를 마음껏 마셔야 할지 매우 고민했다"고 털어놓자, 이 대통령은 "제가 일본 의회에 직접 전화해서 하루 더 머무를 수 있도록 손을 써볼까요?"라고 유쾌한 농담을 건네어 좌중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는 화답하며 다음번 셔틀외교는 피로를 풀 수 있는 일본의 고즈넉한 지방 온천 도시에서 진행하자고 제안했고 이 대통령 역시 흔쾌히 화답했다. 1박 2일의 안동 체류 일정을 성황리에 마친 다카이치 총리는 5월 20일 오전 대구공항에서 전용기편으로 일본으로 귀국했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즉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 양국 문자로 "머지않아 다시 총리님을 만나 뵐 수 있길 기원합니다"라며 두터운 우정의 작별 인사를 보냈다.

 

 

9. 역내 평화 아키텍처: 다자 연대의 복원과 동북아 평화의 동상이몽

  에너지와 경제, 과거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합의를 도출한 두 정상은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역내 다자간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인태 지역의 안정화를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대원칙적 합의에 도달했으나, 해당 합의의 기저에는 양국 외교 라인의 본질적인 '동상이몽(同床異夢)'과 전략적 노선 차이가 도사리고 있다.

 

9.1 한일의 평화 로직의 괴리와 지정학적 동상이몽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동북아 평화의 내부 로직은 확연히 결을 달리한다. 대한민국 이재명 정부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고 북방 교역로 및 대중 관계의 경제적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중·일 3국 협력 체계'의 제도적 복원을 동북아 평화의 핵심 축으로 간주한다. 반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내각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한·미·일 3각 군사·안보 동맹'의 현대화와 대북·대중 억지력 강화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외교는 미일 동맹을 축으로 배치하면서 해상 교통로 및 대만 해협 등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배제하는 배타적 다자 공조를 구사하며, 이는 현재 극에 달한 중일 갈등의 현실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외교 안보 축 대한민국 이재명 정부의 로직 일본 다카이치 내각의 로직 지경학적 충돌 양상 및 변수
최우선 다자 플랫폼 한·중·일 3국 협력을 통한 다자간
경제·평화 공존
한·미·일 3각 군사 동맹 고도화 및
인태 억지력 강화
미·중 패권 경쟁 심화 국면 하의
다자 공조 연대 충돌
대중국 외교 기조 한중관계의 안정적 관리 및 호혜적 교류 정상화 천명 미일동맹 하 '대만 유사시 군사 개입' 명시 및 배제 노선 중일 영토·안보 마찰 심화 및
한국에 대한 공조 압박
대북한 안보 철학 대결 종식 및 체제 공존 기반의
'싸울 필요 없는 평화'
강력한 압박과 군사 억제 우선,
납북자 공조 요구
제재 국면 속 군사적 긴장 고조
vs 평화 프로세스의 대립

 

9.2 중일 대치 국면을 역이용하는 한국의 우회적 실리 외교 전략

  이러한 동상이몽의 지경학적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냉혹한 생존 전략은 명확하다. 한국은 북한 및 중국과 물리적으로 영토를 접하고 있어 안보 갈등이 심화할 시 불필요한 마찰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일 동맹 체제 속에서 중국을 관리하며 철저히 이용하는 외교 노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만 해협 등 민감한 역내 현안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는 일정한 '외교적 거리두기'를 상시 가동하며, 대중국 견제의 직접적 전위대 역할은 대중 갈등 수위를 전례 없이 끌어올리고 있는 일본에 양보하는 우회 전술이 필수적이다. 일본을 대중국 방패막이로 전면에 내세우고 그 후방에서 발생하는 지경학적 틈새를 전략적으로 역이용하는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실제로 2025년 말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하여 11년 만에 국빈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관계의 정상화'를 대대적으로 선언하는 한편, 미국과의 공동 팩트시트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 한국 건조 지원' 합의 등 실질 안보 자산을 확충하는 균형 감각을 보였다. 중국은 한미 안보 밀착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한국과의 관계 관리를 위해 강한 공식 보복을 자제하는 관망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한일 정상회담 직전, 일본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개입 발언을 정조준해 일본에 대한 이중용도 품목 수출 금지라는 물리적 제재를 단행함으로써 한일 안보 공조에 균열을 시도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지정학적 위기 해결이 다급해진 일본은 한국을 안보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달이 날 수밖에 없으며, 한국은 이러한 일본의 안보적 조급증을 완벽한 협상 레버리지로 사용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힘의 외교 하에서 독자적 줄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학계의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며, 동북아 3자 관계 중 한 축은 반드시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상존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상호 불신과 갈등 구조를 수동적으로 감내하기보다, 철저하게 실용적 실리 외교 노선에 입각해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자국의 국익을 수확하는 영리한 조타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10. 한일 관계 60주년을 향한 새로운 60년의 전략적 제언과 이익 극대화

  2026년 5월 경북 안동에서 거행된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과거의 소모적 대립 양상을 청산하고, 미증유의 글로벌 공급망 파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성된 고도의 지경학적 '서바이벌 동맹'이다. 다가오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미래지향적 협력의 원년으로 삼기 위해, 본 연구가 제시하는 구조적 정책 제언과 이익 극대화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유·석유제품 및 LNG 상호 융통 스와프 거래 메커니즘의 법적 조약화이다. 현재 체결된 스와프 합의는 비상시 선의에 기초한 민관 대화 장려 및 상호 융통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구속력이 취약하다. 양국은 새롭게 출범시킨 '한일 산업통상정책대화' 실무단을 즉각 가동하여 위기 상황 발생 시 불필요한 수출 제한 조치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융통 물량의 실물 인도를 즉각 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정부 간 정식 조약(Treaty) 수준의 집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세계 최대 구매 연합인 한국가스공사와 JERA의 LNG 공동 수입 비중을 정례 배분하여 동북아 프리미엄을 상쇄하는 가격 협상 테이블을 상설 운영해야 한다.

 

  둘째, 거시 금융 방어선의 기한 연장 및 전방위적 규모 확대이다. 2026년 11월 말 만료를 앞두고 있는 100억 달러 한도의 미 달러화 기반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 전이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조건 없이 우선 연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100억 달러 규모는 글로벌 유가 및 에너지 수입 대금의 폭증 추세를 감안할 때 실효적 구제 금융액으로 기능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다. 양국 경제 당국은 차기 재무장관회의를 신속히 소집하여, 과거 2011년 구축했던 700억 달러 규모 수준으로 통화스와프 한도를 단계적으로 증액하는 로드맵에 합의해야 한다. 나아가 대미 투자 기업들의 환변동 헤징을 위한 무제한 달러 스와프 구상을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한일 재무당국 간 3자 공동 아젠다로 설정해 국제 금융 시장의 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셋째, 인도주의적 해법의 영구적 제도화 및 과거사 문제의 다각적 분리 관리이다. 조세이 탄광 수몰 희생자 DNA 감정 합의가 보여준 성과를 고착화하여 사법적 다툼과 인도적 추도를 분리하는 외교 프레임을 가동해야 한다. 양국 정부는 조세이 탄광의 신규 유해 수습 및 탐사 작업을 전적으로 민간 시민단체 재원에 방치해 둔 현행 합의 구조의 모순을 해결해야 하며, 양국 공동의 정부 재원을 출연한 '한일 인도주의 유해 발굴 공동 재단'을 출범시켜 우키시마호 사건, 사할린 잔류 동포 구제 등 잔존하는 역사적 상흔에 국가적 책무를 공식 이행해야 한다.

 

  넷째, 냉혹한 교환 외교(Quid Pro Quo)에 입각한 국익의 극대화이다. 일본의 다카이치 내각이 국내 정치적 지지율 제고와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북한 납북자 공동 조사 지원, 초국가 스캠 범죄 단속을 위한 경찰 합동수사본부 구성 등 미시적 치안 공조에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협조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이러한 인도적·치안적 협력을 무상으로 제공해서는 안 되며, 이를 지렛대 삼아 달러 통화 스화프를 연장하는 등 감정적 반일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등가 교환을 추구하는 상업적 실용주의에 입각할 때에만 양국은 지속 가능한 균형 발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 자치 단체 및 문화 연계 중심의 '탈중앙화된 신뢰 인프라' 강화이다. 나라현에서 안동으로 이어지는 양국 정상의 고향 교차 셔틀외교는 수도권 엘리트의 행정 편의주의적 장벽을 해체하고, 양국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정서적 유대를 각인시켰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안한 차기 일본 온천 소도시에서의 셔틀외교 추진을 조기에 정례화하고, 청년 세대 교류 연간 1,500만 명 시대를 겨냥한 지방 도시 간 직항 노선 확충 및 문화 콘텐트 공동 제작 펀드를 결성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고립과 에너지 안보 영토가 마비되는 전 지구적 정글 국면에서, 서로의 실물 자본과 금융 완충력을 융통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국가적 안녕을 장담할 수 없는 유기적 결속 단계에 진입했다. 안동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의제들의 실천적 정책 추진 속도를 획기적으로 올림으로써, 다가올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생존 아키텍처를 양국이 주도적으로 선도해야 할 책무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 2026 안동 한일 정상회담 핵심 요약

1. 왜 지금 한일 정상회담인가? (글로벌 복합 위기의 돌파구)

  • 지정학적 실존 위기: 중동 정세의 극단적 악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에너지 도입선이 마비될 위기에 처하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의 공동 대응이 불가피해졌다.
  • 셔틀외교의 질적 진화: 공식적인 행정 수도를 벗어나 정상들의 고향(나라현, 안동시)을 교차 방문함으로써 탈관료주의적이고 격의 없는 인간적 신뢰를 구축, 비상 공동대응을 위한 강력한 신뢰의 인프라를 확보했다.

2. 에너지·공급망 협력의 경제 지학적 실리

  • 세계 가스 시장 주도권 확보: 단일 기업 기준 세계 1위 구매력을 가진 한국가스공사와 2위인 일본 JERA의 연대를 바탕으로 강력한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구축함으로써 판매자 위주의 LNG 시장에서 영구적인 매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 한일 실물 자원 스와프: 원유·석유제품·LNG의 긴급 융통 체계를 마련하여 단기적인 에너지 수급 차질 우려를 상쇄했다. 한국의 석유제품 수입 의존도(휘발유 6.5%, 항공유 31.2%)가 압도적으로 높은 일본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일부 일본 우익들의 반발은 매우 무지하며 감정적인 혐한 논리에 불과하다.

3. 동북아 평화의 '동상이몽'과 한국의 우회적 실리 외교

  • 외교 노선의 본질적 괴리: 한국은 '한·중·일 협력' 중심의 평화 공존을 원하나, 일본은 '한·미·일 동맹'을 축으로 한 대중국 배제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 한국의 우회 전술과 실익 극대화: 북한 및 중국과 인접한 한국은 동맹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갈등의 전면에 서기보다 일정한 '외교적 거리두기'를 견지해야 한다. 중일 갈등 국면을 활용해 대중 견제의 실질적인 전위대로 일본을 앞세우고, 후방에서 국가적 실익을 챙기는 냉혹하고 전략적인 '실리 실용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4. 과거사의 전향적 해법과 다층적 안전망 가동

  • 조세이 탄광 희생자 DNA 감정 착수: 사과와 금전 배상 등 정치적 소모전에서 벗어나 보편적 인권 차원의 '인도주의적 협력'으로 역사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 전향적 과거사 해법을 도출했다. 
  • 다층 안전망 구축: 2026년 11월 만료 예정인 100억 달러 규모의 달러화 기반 통화스와프 연장을 긴밀히 공조하는 동시에 , 날로 고도화되는 초국가 스캠 범죄 근절을 위한 경찰청 간 실질적 수사 공조망을 공식 가동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안동 회담은,

"한국 정부가 감정적인 반일이나 수동적인 추종에서 벗어나
철저한 국익 중심의 상업적 실용주의에 입각해
일본을 한국의 경제적·외교적 완충재이자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냉혹한 실리주의 외교’의 출발선에 섰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회담이었다"

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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